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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이 비싼 거만 단점이게? 에어팟 맥스 AirPods Max / 감성에 몸을 지배당한 자의 결론

by 작가 전성배 2023. 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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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 겨울, 애플은 겨울에도 귀가 시리지 않은 에어팟을 출시했다. 이름하여 ‘에어팟 맥스 AirPods Max’. 이제 우리는 겨울에 야외에서 음악을 들을 때 더 이상 귀 시린 거 없이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귓속에 박히는 게 고작인 에어팟과 에어팟 프로와 달리 에어팟 맥스는 헤드폰인 만큼 이어컵이 귀 전체를 감싸는 것으로 찬바람을 원천 차단하니까. 그러면서도 여전히 강성한 노이즈 캔슬링과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는 음질을 즐길 수 있게 해 주니, 나처럼 계절에 상관없이 몇 시간이고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특히 좋은 제품이 되었다. 거기에 애플 제품 특유의 알루미늄 바디가 주는 심플하고 매트한 분위기와 어디에든 잘 어울리는 조화성은 패션쟁이들 한테도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솔직히 오늘날 에어팟 맥스는 패션용으로 완전히 기울어진 듯하다.) 에어팟 맥스는 그야말로 완벽한 무선 헤드폰이요, 귀마개, 패셔너블한 아이템이었던 것이다. 출시 초기 가격만 빼고 모든 게 완벽하다는 평을 받았던 게 이해가 된다. 그런데 이걸 어쩌나, 그 가격 하나가 장점 여럿을 후려갈겼다.

2023년 1월 기준 공식 홈페이지에서 769,000원, 쿠팡에서는 스페이스 그레이 색상이 가장 저렴한데, 그래 봤자 730,550원으로 근소한 차이이다. 웬만한 태블릿PC와 맞먹는 가격. 나는 운이 좋게 지난가을 쿠팡에서 50만 원 중반에 구매를 하긴 했지만, 지금도 감히 말할 수 있다. 에어팟 맥스는 50만 원이든 70만 원이든 터무니없이 비싸다. 음악이 나오는 존나 비싼 귀마개. 우스갯소리로 말하는데, 만에 하나 보온력 때문에 에어팟 맥스를 고려한다면, 에어팟 프로에 귀돌이를 차시라.

 

에어팟 맥스의 단점은 오직 가격뿐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나도 그랬지만, 사용해 본 결과 그것만이 다가 아니다. 가격만 비싼 게 단점이었다면 굳이 이 글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즉 에어팟 맥스는 가격 하나가 장점 여럿을 후리는 게 아니라, 사실 가격의 뒤에 숨은 단점 몇 개도 함께 장점을 때린다. 가격의 뒤에 숨어 얍삽하게 잽잽. 비겁하고 나약한 펀치지만, 꾸준히 타격을 주며 대미지를 쌓는다. 가격은 대장 정도라고 보면 될 것이다.

 

가격부터 짚고 넘어가자

에어팟 맥스를 구매할 당시는 내가 한창 헤드폰이란 카테고리에 관심을 가졌던 때이다. 가수 아이유 씨가 광고해 유명해진 소니의 WH-1000X M5, 음향 기기로 유명한 보스의 QC 45가 에어팟 맥스와 함께 내가 끝까지 구매를 고려했던 제품들이다. 둘 다 디자인, 음질, 노이즈 캔슬링을 비롯한 여러 편의 기능들이 외형과 함께 전반적으로 탁월한 면모를 보이는데다, 가격도 에어팟 맥스 대비 저렴해 헤드폰 마니아들 사이에서도 칭찬이 자자했다. 말이 나온 김에 두 제품의 가격을 보면 소니는 40만 원 초반, 보스는 30만 원 초반이다. 소니의 경우 이전 세대인 M3는 30만 원 초반, 해외 배송은 20만 원 초반에도 찾아볼 수 있다. (2023년 1월 기준) 70만 원 후반대인 에어팟 맥스와 비교하면 절반 수준이다. 

오래 사용할수록 느껴지는 무게의 부담감

384.8g이라는 에어팟 맥스의 무게를 처음 들었을 땐 별 감흥이 없었다. 실착을 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위에서 비교한 소니와 보스의 제품과 달리 알룸미늄 소재를 써 보다 더 견고한 만듦새를 가진 것을 고려하면 되레 “이 정도면 가볍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몇 시간이고 카페에서 작업하며 착용을 했을 때 이야기는 달라졌다. 유닛 기준 두 쪽을 다해도 10.6g 정도인 에어팟 프로를 장시간 착용하는 것과 이에 수십 배는 더 무거운 에어팟 맥스를 착용하는 건 다른 문제였다. 몇 시간 찰 것도 없이 한 시간 정도만 지나도 헤드폰의 무게감이 절실히 느껴졌다. 특히 목에 오는 부담감이 상당했는데, 뻐근해진 목을 수시로 돌려가며 풀어 줘야 겨우 버틸 수 있었다. 착 감기던 착용감도 시간이 지날수록 불편하고 답답하게 느껴졌다. 다만 이 답답함은 헤드폰이란 기기가 가진 고유의 특징이니 더 이상 말은 않겠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소니의 M5와 보스의 QC 45는 무게가 어떻게 될까? 각각 250g, 241g으로 둘 다 에어팟 맥스와 비교해 100g이상 가볍다.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치이다.

 

노이즈 캔슬링과 헤드폰의 부조화

처음 에어팟 맥스를 착용해 노이즈 캔슬링을 작동했을 때 사실 기대 이하였다. 에어팟 프로 1세대와 2세대를 모두 사용하는 입장에서 에어팟 맥스의 노이즈 캔슬링은 그들과 비슷하거나 때에 따라선 더 나쁘기도 했다. 그리고 이 지점이 에어팟 맥스에서 가장 실망스러운 부분이다. 헤드폰 특유의 차폐력이 자연적인 노이즈 캔슬링을 유발, 거기에 액티브 노이즈 캔슬링이 작동하면 경험이 극대화될 것이라고 했던 누군가의 말이 틀렸던 것이다. 정확히는 반 틀렸다.

 

착용한 채 고개를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다는 가정하에 에어팟 맥스의 노이즈 캔슬링 성능은 분명 우수했다. 그래 봤자 에어팟 프로 1세대와 견줘 비슷한 수준이지만. 문제는 이 비슷한 수준조차 일정하게 유지되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그 무거운 에어팟 맥스를 착용하고 고개를 안 움직이는 게 말이 되나? 앞서 말했듯 무게가 상당하니 나도 모르게 고개를 움직이며 목을 풀어 줘야 한다. 그리고 그때마다 필연적으로 에어팟 맥스의 이어컵과 얼굴의 접촉 부위에서 이격이 발생하는데, 그 틈으로 걸러 내지 못한 주변음이 흘러들어왔다. 노이즈 캔슬링은 완벽히 차폐된 환경에서 온전한 성능을 발휘할 수 있기에 결국 자주 불쾌감을 느껴야 했다. 짐작건대 에어팟 맥스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이 단락의 소제목을 에어팟 맥스가 아닌 헤드폰이라고 한 것도 그 이유에서다. 다만 에어팟 맥스는 그 무거운 무게로 인해 타 헤드폰보다 고개를 더 자주 움직일 수밖에 없다는 점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참고로 고개를 움직이는 것뿐만 아니라 단순히 입을 벌리는 동작에서도 접촉면에 틈이 발생하다 보니, 헤드폰의 노이즈 캔슬링 기능은 이어폰에 비해 확실히 별로다.

 

새삼 에어팟 프로가 참 대단한 제품이었구나 싶다. 오픈형의 에어팟을 쓰다 커널형의 에어팟 프로를 처음 썼을 땐 귓속에 박히는 느낌이 불편하고 거슬렸지만, 한때일 뿐. 이런 형태야말로 노이즈 캔슬링을 제대로 끌어낼 수 있는 것이었다.

코로나 세상에서 헤드폰은 불편해

에어팟 맥스가 출시되던 해의 1월 말 국내에 첫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했다. 설을 코앞에 둔 시점이었다. 설이 지나자 감염자가 눈에 띄게 늘기 시작하더니 부지불식간에 전 세계가 코로나의 위험성을 말하기 시작했고, 우리는 그 무렵 봄부터 본격적으로 마스크를 착용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9개월 가량의 시간이 지나 에어팟 맥스가 나왔을 땐 우리 모두에게 마스크는 몸에 일부가 된 상태였다. 이런 세상에서 헤드폰과 무선 이어폰의 편의성은 더욱 극명하게 갈렸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무엇을 먹거나 마실 때, 말할 때 등 특정 상황에서 부득이하게 마스크를 내려야 할 때 극명한 차이를 보였다.

 

마스크는 양쪽에 달린 끈을 귀에 걸어 착용하는 게 일반적이니, 헤드폰을 착용한 상태에서 마스크를 빼려면 반드시 헤드폰을 먼저 빼야 한다. 반면 귓속에 끼는 무선 이어폰은 착용 여부에 상관없이 마스크를 빼는 데 지장을 주지 않는다. 물론 마스크 끈을 귀에서 뺄 것도 없이 일명 ‘코스크’ ‘턱스크’처럼 바로 내려 버리는 대안도 있지만, 맨 얼굴일 때나 가능한 일이다. 비비크림이라도 발라 본 사람이라면 이해할 것이다. 마스크에 묻는 불편함을. 끈을 빼지 않고 마스크를 내리게 되면 화장이 금세 지워지고 만다. 이것이 신경쓰이지 않는다면 몰라도, 비비크림 정도의 가벼운 화장부터 본격적인 메이크업 등 얼굴에 무엇을 바르는 사람이라면 열이면 열 마스크를 내릴 때 끈을 뺄 것이다. 헤드폰은 이런 사람들을 더욱 불편하게 만든다.

화장과 헤드폰

화장에 대한 얘기가 나온 김에 내가 에어팟 맥스를 스페이스 그레이로 구매한 이유를 말하는 것도 좋겠다. 헤드폰은 말했든 귀 전체를 감싸하면서 얼굴의 옆 부분에 밀착되는 제품이다. 당연히 이어컵에 화장품이 묻을 수밖에 없다. 더욱이 에어팟 맥스는 여타 제품이 가죽 재질을 사용하는 반면 ‘패브릭 매쉬’ 즉 천 소재를 직조한 형태의 이어컵을 사용하기 때문에 이염에 더 취약하다. 하물며 실버 색상은 이어컵이 흰색이니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그래서 그나마 이염이 되어도 티가 덜 나는 스페이스 그레이 색상을 선택했다. 

 

여담으로 패브릭 재질 특성상 땀이나 냄새로 인한 오염도 무시할 수 없는데 애플에서도 이를 고려했는지, 에어팟 맥스를 출시할 때 이어 쿠션도 별도로 구매할 수 있게 했다. 오염되면 바꾸라는 뜻이다. 가격은 85,000원.

 

에어팟 맥스는 겨울용, 에어팟과 에어팟 프로는 봄, 여름, 가을용

패브릭 소재의 또 다른 단점은 덥다는 것이다. 이것은 겨울에 난방을 하는 실내에서도 마찬가지다. 에어팟 맥스를 장시간 착용하면서 무게와 자꾸만 거슬리는 노이즈 캔슬링 다음으로 불편했던 건 따가움? 간지러움? 같은 피부 자극이었다. 복합적인데, 직조 형태로 짜인 천 재질이 장시간 귀와 볼에 밀착되니 접촉 부위가 따갑고 간지러웠다. 그리고 그로 인해 덥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건 피부 타입에 따라 좀 갈리겠지만, 나의 경우는 그랬다. 무게가 무겁기에 착용했을 때 더욱 힘 있게 머리를 조이는 구조도 한몫 하는 듯하다. 다만 이건 기온이 따듯한 곳에서 느껴지는 불편함이다. 겨울 야외에서는 찬바람에 피부가 경직되서 그런지 몰라도, 이어컵의 압박이나 재질이 주는 자극은 덜 느껴지고 따듯하기만 했다. 딱 겨울 한정이다.

 

이 외의 계절 특히 여름에는 피부 자극뿐만 아니라 오염 때문에라도 착용은 힘들다. 두피에도 땀이 날 텐데, 머리에 얹혀지는 부위도 이어컵과 같은 재질이다 보니 오염이 되면 막막하다. 이 부분은 교체도 되지 않으니 말이다. 결국 이 때문에 겨울에만 에어팟 맥스를 사용하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에어팟 프로를 기본으로 에어팟 맥스를 겨울에만 국한해 혼용하고 있다.

결론은 그래서 후회하나

이 글의 타이틀에서 이미 스포했다. 결론은 후회하지 않는다. 감성에 지배당했으므로. 이 디자인과 조화성, 애플 기기 간의 연동성을 경험하고 있자니 마치 맥북과 아이패드, 아이폰을 처음 쓸 때처럼 처음에는 불편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보다 더 좋은 제품이 없다는 것을 느낀다. 이건 나처럼 여러 애플 제품을 동시에 쓰는 사람에게만 주는 만족감이 아니다. 이런 기계적인 만족감 외에도 패션을 중시하는 사람에게도 큰 만족감을 주는 중이다. 헤드폰 시장은 매니악하다고 정평이 나 있던 국내 시장이 에어팟 맥스가 출시하자 순식간에 경향이 바뀌었다. 어느 한 부류의 사람들만 만족해서는 결코 바뀔 수 없던 시장이었다.

 

물론 시중에 찾아보면 에어팟 맥스보다 더 나은 기능과 음질, 디자인의 헤드폰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건 대체로 에어팟 맥스의 가격을 아득히 뛰어넘는다. 이 정도 가격대에 이런 만듦새와 패션성, 편의성을 견비한 헤드폰은 없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에어팟 맥스를 구매한 걸 후회하지는 않는다. 단지 짜증이 났을 뿐. 어처구니없으나 미워할 수 없고, 후회하지 않는 만남을 자꾸만 성사시키는 애플이 얄미울 뿐.

 

끝으로 구매를 고민 중이라면 나는 구매를 추천한다. 다만 나처럼 새 제품을 50만원 대에 구매할 수 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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