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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행복한 순간 ※ 유튜브 채널 '시뷰'를 구독하고 영상 수필을 시청해주시면 전 기쁠 거예요 :D유튜브 바로가기내가 가장 행복할 수 있는 순간을 찾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사는 동안 숱하게 마주하는 인연과 끝없이 반복하는 생활을 환기시키는 약간의 소담은 혈류의 속도를 높여 몸에 기운을 북돋아 주지만, 그것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 진정한 순간이 되는 건 아닐 것이다. 일방적으로 내 것을 주던 사람과 감정을 교환할 수 있게 되었을 때의 행복이나, 무언.. 더보기
기억으로만 전승되는 놀이 "쎄쎄쎄 아침 찬 바람에 울고 가는 저 기러기…" "남산 위에 초가집 짓고 어여쁜 얼굴로 달려갔더니 옆집 순이는 시집을 가고…" "영심이 메롱 영심이, 영심이 짝짝 맞아 영심이…" 이른 저녁 시간에 연인과 방문한 음식점에서 은은히 퍼지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초등학생도 안돼 보이는 사내아이와 여자아이는 서로 손을 맞잡고 "쎄쎄쎄"를 하며 몇 사람 없는 홀에 까르르 웃음소리를 함께 퍼뜨렸다. 그날 식당에는 사람이 거의 없어 한산하기까지 해서.. 더보기
언어,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되는 말 끝이라는 맺음의 글자를 모르듯 말은 계속해서 퍼져 나간다. 사라져 지워지는 것이 아닌 진득하게 뱉어진 말이 공중이라 불리는 바다에 떨어져 희석되어 흩어진다. 그리곤 한 방울의 물로 바다가 되어 부유한다. 말이란 애초에 그러했다. 사람에게서 뱉어지고 모여 오래전부터 또 하나의 바다를 이뤘었다. 인류의 수가 늘어감에 자연스레 언어는 발전했고, 어느샌가 말은 발전에 발전 끝에 무기가 되어 사람을 해치고 살리는 만용까지 벌였다.  엄밀히 따지자면.. 더보기
우리를 연결하는 오지랖 "학생 앞을 보고 걸어야지"깜짝. 단호한 어조와 함께 약간의 짜증이 섞인 목소리가 귀를 찔렀다. 서둘러 고개를 들어 올려 정면을 보니 목소리의 주인공을 발견한 것이 아닌 인도의 끝을 걷고 있는 나를 알아차릴 수 있었고, 곧 중년의 아저씨가 옆을 스쳤다. 손에 들고 있던 휴대폰에 정신이 팔려 안전을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그가 얘기해주지 않았다면 나는 인도를 벗어났거나 가만히 서있던 구조물 혹은 사람과 부딪혀 다쳤을 것이 분명했다. 그날은 20살 언저.. 더보기
새벽에 마주한 공중전화박스 하루 사이에 무겁게 내려앉은 겨울 추위 속에서 눈을 떴다. 시간은 새벽 5시 30분이었고, 휴대폰 배경에 띄어 놓은 날씨 위젯에는 '-8도'라는 숫자가 쓰여있었다. 그저께만 해도 이 시간에 온도는 영상 10도를 기록하고 있었는데, 이틀 사이에 20도에 가까운 온도 차이로 한 순간에 한 겨울이 되고 말았다. 그 날밤 겨울을 얕잡아 보던 나의 말을 들었던 것일까. "12월인데 아직도 최저 온도가 영하로 떨어지지 않다니. 올해 겨울은 유난히 추울 거라 .. 더보기
도깨비의 마지막 장 생生에 대한 의지와 연명延命하기 위한 노력과 갈망은 끝이라는 죽음의 존재를 통해 발현된다. 즉, 죽음이 있기에 생生은 동력을 갖고 회전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고, 사람은 시간과 중력을 쌓아가며 늙어갈 수 있다. 그 안에서 보람과 삶의 의미를 되새긴다. 그렇기에 생生을 영원으로 산다는 건 의미 없는 삶의 반복이었다. 배고픔에 허덕이던 때와 부유함에 차고 넘치던 여유도 긴 생에서는 조금의 위안도 되지 않았다. 저녁이 되어가는 낮의 마지막 장이나 수십 .. 더보기
동지팥죽의 거짓말 겨울을 닮은 차가운 바람이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날아온다. 이미 한낮에도 온기는 결핍되었고, 햇빛마저 없는 날이면 옷이 물에 빠진 듯 냉기를 머금는 탓에 움직이는 내내 살갗이 시리기까지 하다. 하얀 눈과 따뜻한 옷감으로 몸을 꾸미는 겨울이라는 계절은 감상하기에는 좋지만, 보내기에는 이런 이유로 조금은 두렵기도 하다. 11월의 중간은 아직 겨울이라 할 수 없는 모호한 탈피의 계절이다. 길가의 은행나무와 단풍나무가 말라 가는 것을 보며 겨울의 도착 일.. 더보기
책, 한때 소중했던 것들 이기주 작가의 신간 <한때 소중했던 것들>이 나오자마자 구매해 꽤 오랜 시간을 들여 읽었다. 앞서 <언어의 온도>와 <말의 품격>은 본업에 꽤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사는 통에 여가 시간이 없었음에도 이 틀이 채 되기 전에 읽었던 것에 비하면 꽤나 느린 속도로 읽은 것인데, 아마도 앞의 두 권을 책을 단순히 읽은 독서라는 목적 외에도 새로운 자극이나 생각들을 얻기 위한 행동도 포함되었기에 그런 것 같다. 두 권의 책을 .. 더보기
고향의 '향'이 되는 냄새 소란스러운 한낮의 도시는 새벽에도 어김없이 본연의 모습을 발한다. 지치지 않고 불을 밝히는 등대나 꺼지지 않는 가로등은 새벽이 내는 또 다른 빛이라는 소음이다. 낮은 귀를 파고드는 소리에, 밤은 눈을 아득하게 하는 빛에 우리는 쉼 없이 쬐여 어느샌가 지쳐버리곤 한다. 그래서 도시의 발달에 정기를 빼앗겨 빛을 잃은 듯한 깊은 시골의 어둠은 공포보다는 아늑함, 나른함 보다는 안식이라는 단어가 더 잘 어울린다. 특히, 그곳이 가진 그곳만의 향이 되지 못한.. 더보기
비웃는 땅에 첫 발자국을 남기기까지 "여기는 지구, 우리는 표류되어 있다.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취해 치욕과 욕심, 모든 선과 악을 알게 된 뒤에도 우리는 지구라는 섬에서 억겁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실은 시간의 순행에서 우리는 꽤 오랫동안 알지 못했다. 표류해 있다는 진실과 바다는 검은 것이었고, 그곳에는 무엇도 헤엄치지 않는 다는 걸. 그저 행성과 항성. 그것들의 멸망과 탄생만 있을 뿐이라는걸. 하지만 곧 알게 되었다. 첫 번째, 우리는 섬에 갇혔다. 끝과 끝이 붙어 버린 동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