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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감홍 / 너는 누구보다 달콤했다. 가을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색으로 가을에 열리는 녀석은 마치, 어린 시절 내가 사고를 칠 때면 "넌 대체 누굴 닮은 거니"라 말씀하시던 어머니의 꾸중을 떠오르게 한다. 세상을 온통 노란색의 범주 안에 들어가는 모호한 색으로만 천지에 깔아두는 가을에, 유별나게 붉은 색을 띠는 사과는 어머니의 꾸중처럼 가을과는 어울려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꾸준히 가을에 태어나던 녀석들은 매번 늠름하게 자라 어머니께 말한다.가을은 사실 매일 .. 더보기
무화과 / 나는 지금 이 가을의 문턱을 한 박스 사들고 집으로 향하기로 했다. 요즘은 하루하루 저녁 바람이 시원하게 부니 가을을 기다리는 마음이, 곧 떠날 여행일자를 기다리는 마음만큼 설렌다. 높은 가을 하늘을 물들일 석양을 닮은 물감이 얼마나 예쁠지, 상상만으로도 끝자락인 여름에게 위로마저 보내고 싶은 요즘. 새로운 과일 하나가 눈에 띄었다. 武(없을 무)와 花(꽃 화)를 써서 "꽃이 없는 과일"이라 불리는 '무화과'다. 이것을 시작으로 식욕의 계절이라 불리는 가을은 다채로운 먹거리로 풍년을 불러일으키겠지.오늘, 엄한 마음만.. 더보기
아오리 사과 / 상큼함이 어금니를 누르듯 짜증을 달래는 개운한 맛 #쉰 두번째 글우거진 숲unsplash여름 숲은 총천연색(總天然色)을 이루며, 바람에도 자연스러운 풀내음을 실어 날린다. 가을과 겨울의 합작으로 죽어 잠들게 한 것들을 다시금 봄이 보채어 여름이 일으킨다. 무한정 반복하는 계절의 순환. 그래서인지 땅에서 태어나는 과일에는 그 날의 계절이 깊게 배어있다.오늘은 그중에서 여름의 푸르름이 깊게 배인 과일 하나를 말하려 한다. 사과이지만 가을처럼 붉은 것이 아닌, 숲의 푸르름을 두른 아오리.. 더보기
망고 스틴 / 손에 들린 망고스틴에도 비가 들이쳤다. #쉰한 번째 글여왕이 사랑한 여왕제 시간이 가장 많아진 낮은, 저녁 늦도록 달군 공기를 끈질기게 이어갔다. 이젠 밤에도 그 열기가 남아 불어오는 바람에도 답답한 숨이 따라온다. 조금 이른 '열대야'에 밤잠마저 설칠 지경이니 시원한 과일이라도 먹어야겠다. '눈에 눈 이에는 이' 맥락 없는 소리지만, 열대야에는 열대과일을 먹어야겠다.나에게 망고 스틴을 가져오는 자에게는 기사의 작위를 내리겠노라과거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은 그 풍미와 맛에 반해 이런 말을 .. 더보기
복숭아 / 아직은 그 날에 추억과 대립할 기억이 만들어지지 않으려는 모양이다. #쉰 번째 글향을 타고 날아온다마지막 봄꽃 하나를 말하려 한다. 한여름인데 아직도 봄꽃 이야기를 하는 것에 의구심이 생기겠지만, 복숭아를 말하려면 그를 맺게 하는 '복사꽃'을 빼놓을 수 없다. 상상만으로도 꽃향이 날아드는 듯, 아득해진다.'복숭아꽃'이라고도 불리는 이 꽃은 4월 중순부터 하순까지만 개화하며, 이후에는 복숭아를 달고 1~2개월을 키워낸다. 매화나 살구는 커봤자 손가락 두 마디를 넘지 않으니 금세 자라지만, 복숭아는 그 크기부터가 보통 .. 더보기
홈쇼핑 / 취지를 잃어버리다. 우리나라의 초석을 다져준 것휴전 국가 대한민국. 1953년 7월 27일, 3년간 피 흘리던 한반도는 치료가 아닌 선을 긋는 지혈(止血)만으로 무기한 휴전상태에 들어갔다. 우리나라를 노골적으로 Reset시킨 비극(悲劇). 당시 그들이 키워온 추억과 자부심은 황량(荒涼)해진 땅위에서 애한(哀恨)으로 탈바꿈하였다.pexels내가 일본의 문화를 좋아하게 된 이유는 100년, 200년 전통이 곳곳에서 그리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는 것에 있다. 키 작은 주.. 더보기
대석 자두 / 비에 젖은 여름처럼, 진득한 단향과 단맛은 입안에서 떠나지 않았다 #마흔아홉 번째 글달콤함에 매료되는 대석날이 더우니 여러모로 큰일이다. 잠깐만 밖에 서있어도 숨이 턱 끝까지 막히고, 피신하기 위한 커피 값은 장난이 아니다. 아, 벌써부터 이러면 안 될 텐데.. 앞으로 더욱더 온도가 하늘을 뚫을 듯이 오를 텐데..요즘은 비 소식이 일주일에 반절을 차지할 만큼 비가 진부하게 내리는 장마철이다. 그래서인지 가끔 햇빛이 내리쬐는 날이면 반가운 누군가를 만난 것처럼 설레기까지 한다. 그만큼 하루가 멀다 하고 하늘은 시련이.. 더보기
살구 / 정확히는 그 봄의 꽃을 사랑했다. #마흔여덟 번째 글겨울과 여름은 주연, 봄과 가을은 조연봄은 말했다. "나를 언제까지고 그리워해 주길 바라네" 그는 말없이 그 봄을 가만히 담아두었다."우리나라의 강점은 사계절의 구분이 뚜렷하다는 거예요" 10년 전까지만 해도 책 속에 등장했던 말이다. (졸업한 이후로 교과서를 본 적이 없으니..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젠 그 장점은 무색해진지 오랜 듯하다. 계절의 구분은 모호해지고, 편차가 극심해졌다. 이미 계절은 겨울과 여름이 주가 .. 더보기
천도(天桃) 복숭아 / 우리의 것이 아닌 듯했다. #마흔일곱 번째신화 속 전설의 과일옥황상제曰 "오공아 심심하면 '반도원(蟠桃園)'에 있는 복숭아나무를 관리해보겠느냐"제천대성 손오공曰 "음.. 그러죠 뭐 심심한데 (절호의 기회다! 불로장생(不老長生)의 묘약을 혼자 독차지하려 해? 그렇게는 안되지)[얼마 후..]옥황상제曰 "네 이놈!!!"이 얘기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손오공의 일화 중 하나다. 불로장생의 묘약인 열매를 몰래 훔쳐먹는 등 숱한 크고 작은 죄를 짓는 손오공이 결국, 신(神).. 더보기
매실 / 좋아하는 누군가가 나에게 물었다. "좋아하는 꽃이 뭐야?" #마흔여섯 번째 글시작은 매화로부터좋아하는 누군가가 나에게 물었다. "좋아하는 꽃이 뭐야?" 그 물음에 답하기도 전에 그 사람은 나에게 말했다. "아! 벚꽃이지"계절은 벌써 여름이지만, 난 아직도 가끔 지난날 찍어둔 벚꽃을 본다. 그 벚꽃을 볼 때면 새로운 시구(詩句)가 무수히 많은 꽃이 되어 피어난다. 그만큼 나에게 가장 이상이 되어주는 꽃. 그런데, 하나에 빠져 살다 보니 중요한 다른 하나를 간과했다는 걸 저 물음에서 알아챘다. 봄을 '분홍'이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