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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카레미치

새벽에 마주한 공중전화박스 하루 사이에 무겁게 내려앉은 겨울 추위 속에서 눈을 떴다. 시간은 새벽 5시 30분이었고, 휴대폰 배경에 띄어 놓은 날씨 위젯에는 '-8도'라는 숫자가 쓰여있었다. 그저께만 해도 이 시간에 온도는 영상 10도를 기록하고 있었는데, 이틀 사이에 20도에 가까운 온도 차이로 한 순간에 한 겨울이 되고 말았다. 그 날밤 겨울을 얕잡아 보던 나의 말을 들었던 것일까. "12월인데 아직도 최저 온도가 영하로 떨어지지 않다니. 올해 겨울은 유난히 추울 거라 .. 더보기
도깨비의 마지막 장 생生에 대한 의지와 연명延命하기 위한 노력과 갈망은 끝이라는 죽음의 존재를 통해 발현된다. 즉, 죽음이 있기에 생生은 동력을 갖고 회전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고, 사람은 시간과 중력을 쌓아가며 늙어갈 수 있다. 그 안에서 보람과 삶의 의미를 되새긴다. 그렇기에 생生을 영원으로 산다는 건 의미 없는 삶의 반복이었다. 배고픔에 허덕이던 때와 부유함에 차고 넘치던 여유도 긴 생에서는 조금의 위안도 되지 않았다. 저녁이 되어가는 낮의 마지막 장이나 수십 .. 더보기
동지팥죽의 거짓말 겨울을 닮은 차가운 바람이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날아온다. 이미 한낮에도 온기는 결핍되었고, 햇빛마저 없는 날이면 옷이 물에 빠진 듯 냉기를 머금는 탓에 움직이는 내내 살갗이 시리기까지 하다. 하얀 눈과 따뜻한 옷감으로 몸을 꾸미는 겨울이라는 계절은 감상하기에는 좋지만, 보내기에는 이런 이유로 조금은 두렵기도 하다. 11월의 중간은 아직 겨울이라 할 수 없는 모호한 탈피의 계절이다. 길가의 은행나무와 단풍나무가 말라 가는 것을 보며 겨울의 도착 일.. 더보기
책, 한때 소중했던 것들 이기주 작가의 신간 <한때 소중했던 것들>이 나오자마자 구매해 꽤 오랜 시간을 들여 읽었다. 앞서 <언어의 온도>와 <말의 품격>은 본업에 꽤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사는 통에 여가 시간이 없었음에도 이 틀이 채 되기 전에 읽었던 것에 비하면 꽤나 느린 속도로 읽은 것인데, 아마도 앞의 두 권을 책을 단순히 읽은 독서라는 목적 외에도 새로운 자극이나 생각들을 얻기 위한 행동도 포함되었기에 그런 것 같다. 두 권의 책을 .. 더보기
고향의 '향'이 되는 냄새 소란스러운 한낮의 도시는 새벽에도 어김없이 본연의 모습을 발한다. 지치지 않고 불을 밝히는 등대나 꺼지지 않는 가로등은 새벽이 내는 또 다른 빛이라는 소음이다. 낮은 귀를 파고드는 소리에, 밤은 눈을 아득하게 하는 빛에 우리는 쉼 없이 쬐여 어느샌가 지쳐버리곤 한다. 그래서 도시의 발달에 정기를 빼앗겨 빛을 잃은 듯한 깊은 시골의 어둠은 공포보다는 아늑함, 나른함 보다는 안식이라는 단어가 더 잘 어울린다. 특히, 그곳이 가진 그곳만의 향이 되지 못한.. 더보기
비웃는 땅에 첫 발자국을 남기기까지 "여기는 지구, 우리는 표류되어 있다.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취해 치욕과 욕심, 모든 선과 악을 알게 된 뒤에도 우리는 지구라는 섬에서 억겁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실은 시간의 순행에서 우리는 꽤 오랫동안 알지 못했다. 표류해 있다는 진실과 바다는 검은 것이었고, 그곳에는 무엇도 헤엄치지 않는 다는 걸. 그저 행성과 항성. 그것들의 멸망과 탄생만 있을 뿐이라는걸. 하지만 곧 알게 되었다. 첫 번째, 우리는 섬에 갇혔다. 끝과 끝이 붙어 버린 동그.. 더보기
이별을 망설이는 인연 이별과 지속 사이에서 물에 빠진 듯 허우적거리는 인연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하기에 앞서, 이별과 이별하지 않는 것 사이에서의 갈등으로 마음을 쥐어 짜내는 이들과 그때의 나를 떠올려 본다. 각자 자신의 나이까지 살아낸 사람들에게 나이란 곧 인생의 두께를 이야기하는 것이고, 그 두께는 마음에 겹겹이 쌓여 스스로 정립해둔 사상과 가치관, 성격을 보호한다. 나이가 들수록 성격을 못 굽히는 이유도 여기서 비롯되는 것이고, 당연히 이런 두께가 쌓일수록 사랑이라.. 더보기
추억은 나이와 함께 늘어간다. 언젠가 추억과 기억을 나름의 기준으로 구분한 글 하나를 읽게 되었다. 평소 글을 씀에도 글 읽는 버릇을 아직 못 들인 나는 타인의 글을 읽는 것을 스스로 강제해서라도 의식적으로 읽는 편인데, 이는 다른 이의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비어버린 광산에서 새롭게 광물을 발견하는 경험을 매번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은 나에게 있어 새롭게 발견한 광물이 되어준 글 하나를 떠올리며, 추억과 기억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사실 그 글은 추억과 기억을 메인으로.. 더보기
나만의 사랑 법 떠나는 연인의 무거운 발걸음은 무엇에서 비롯된 것일까. 이별 후 버려지듯 남겨지는 이에 대한 연민인 걸까. 아니면 떠난 뒤 언젠가 찾아올 우리가 한 사랑에 대한 그리움 때문일까. 적어도 나는 후자이길 바란다. 연민이나 안쓰러움에서 태어난 무거운 걸음이 아니라, 최소한 내가 너를 사랑한 동안 최선을 다했으니 떠난 후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나를 향한 그리움으로 외로움에 집어삼켜지길 바란다. 외로움에 삼켜진 이는 새롭게 시작할 사랑에 조급해질 수밖에 없.. 더보기
딸기 / 눈 속에 담긴 봄 첫눈에 이어 두 번째 눈이 내린 어제 아침. 여명이 밝아 온 직후였던 하늘에는 파란색의 영향력이 막대했다. 분명 오전에 눈 소식이 있었고, 눈 소식이 있는 날이면 하늘은 전쟁을 준비하는 장수들의 분주함처럼 구름을 한가득 끌어다가 내릴 준비를 할 텐데, 그 전야는 낌새조차 보이지 않았다. 하나, 아주 잠깐 먼 눈을 판 사이. 하늘은 갑작스레 어두워졌다. 당장이라도 눈이 내릴 듯 눈 구름은 몸집을 부풀렸고, 순식간에 눈을 땅 위로 내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