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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새벽에 마주한 공중전화박스 하루 사이에 무겁게 내려앉은 겨울 추위 속에서 눈을 떴다. 시간은 새벽 5시 30분이었고, 휴대폰 배경에 띄어 놓은 날씨 위젯에는 '-8도'라는 숫자가 쓰여있었다. 그저께만 해도 이 시간에 온도는 영상 10도를 기록하고 있었는데, 이틀 사이에 20도에 가까운 온도 차이로 한 순간에 한 겨울이 되고 말았다. 그 날밤 겨울을 얕잡아 보던 나의 말을 들었던 것일까. "12월인데 아직도 최저 온도가 영하로 떨어지지 않다니. 올해 겨울은 유난히 추울 거라 .. 더보기
책, 한때 소중했던 것들 이기주 작가의 신간 <한때 소중했던 것들>이 나오자마자 구매해 꽤 오랜 시간을 들여 읽었다. 앞서 <언어의 온도>와 <말의 품격>은 본업에 꽤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사는 통에 여가 시간이 없었음에도 이 틀이 채 되기 전에 읽었던 것에 비하면 꽤나 느린 속도로 읽은 것인데, 아마도 앞의 두 권을 책을 단순히 읽은 독서라는 목적 외에도 새로운 자극이나 생각들을 얻기 위한 행동도 포함되었기에 그런 것 같다. 두 권의 책을 .. 더보기
고향의 '향'이 되는 냄새 소란스러운 한낮의 도시는 새벽에도 어김없이 본연의 모습을 발한다. 지치지 않고 불을 밝히는 등대나 꺼지지 않는 가로등은 새벽이 내는 또 다른 빛이라는 소음이다. 낮은 귀를 파고드는 소리에, 밤은 눈을 아득하게 하는 빛에 우리는 쉼 없이 쬐여 어느샌가 지쳐버리곤 한다. 그래서 도시의 발달에 정기를 빼앗겨 빛을 잃은 듯한 깊은 시골의 어둠은 공포보다는 아늑함, 나른함 보다는 안식이라는 단어가 더 잘 어울린다. 특히, 그곳이 가진 그곳만의 향이 되지 못한.. 더보기
이별을 망설이는 인연 이별과 지속 사이에서 물에 빠진 듯 허우적거리는 인연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하기에 앞서, 이별과 이별하지 않는 것 사이에서의 갈등으로 마음을 쥐어 짜내는 이들과 그때의 나를 떠올려 본다. 각자 자신의 나이까지 살아낸 사람들에게 나이란 곧 인생의 두께를 이야기하는 것이고, 그 두께는 마음에 겹겹이 쌓여 스스로 정립해둔 사상과 가치관, 성격을 보호한다. 나이가 들수록 성격을 못 굽히는 이유도 여기서 비롯되는 것이고, 당연히 이런 두께가 쌓일수록 사랑이라.. 더보기
나만의 사랑 법 떠나는 연인의 무거운 발걸음은 무엇에서 비롯된 것일까. 이별 후 버려지듯 남겨지는 이에 대한 연민인 걸까. 아니면 떠난 뒤 언젠가 찾아올 우리가 한 사랑에 대한 그리움 때문일까. 적어도 나는 후자이길 바란다. 연민이나 안쓰러움에서 태어난 무거운 걸음이 아니라, 최소한 내가 너를 사랑한 동안 최선을 다했으니 떠난 후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나를 향한 그리움으로 외로움에 집어삼켜지길 바란다. 외로움에 삼켜진 이는 새롭게 시작할 사랑에 조급해질 수밖에 없.. 더보기
이별 후 다시 재회 하루에도 수 천 수만의 생명이 죽고, 그에 준하는 생명이 태어난다. 이별하는 수만큼의 재회가 있고, 새로운 사랑의 생성만큼 사랑이 소멸한다. 그녀를 만난 남자가 있는 반면, 그녀를 잃은 남자가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라 불리는 틀은 이렇듯, 의식적으로 모든 것에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집착한다. 이런 사실이 마냥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세상이 손익을 저울질하며 어느 한 곳으로도 기울지 않도록 애를 쓰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균형을 잃고 결국,.. 더보기
추석은 모두가 행복할 수 없었다. / 중의적 단어 바깥보다 안이 더 분주한 날. 밖 보다 안의 밀도가 더 높아지고 '남'보다 가족의 유대가 더 깊어지는 날. 바로 명절이다. 일 년에 몇 번 보기도 어려운 먼 가족은 '친척'이라는 이름으로 구분만 되어 있을 뿐, 그저 아는 지인 정도에 그칠 만큼 서먹서먹한 관계가 대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누가 만들었는지 몰라도 명절은, 좋은 핑계가 되어 그들을 한 곳으로 끌어 모은다.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게 한다."어찌 됐든 가족이지 않으냐"라는 절.. 더보기
사과 한 조각 / 할머니, 당신이 겹쳐집니다. 하늘에 가을 특유의 '멋'이 짙게 깔려 있다. 가식적인 겉멋이 아닌 당연한 듯한 멋스러움이 저녁 하늘을 채우는 덕에, 시시각각 시선을 빼앗긴다. 좋다 이 가을이. 따가운 볕과 달리 후미진 곳에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까지 다. 가을 분위기에 한껏 취해 정처 없이 한적한 저녁을 돌아다녔다. 조용한 거리든 북적이는 거리든 가리지 않으며 목적지가 없는 방황을 기쁜 마음으로 누렸다. 그러다 동네의 작은 시장에 발길이 닿았고, 저 멀.. 더보기
거꾸로 수박바 / 초점의 오류 비가 내리는 날은 햇빛이 그립다. 햇빛이 폭포처럼 쏟아지는 날은 축축하게 적시는 비가 그립다. 곁에 있을 땐 무감각해지는 것들이 멀어지고 나서야, 그와 다름이 대신하여 자리를 꿰찰 때, 비로소 온 신경이 돌아선 그에게로 쏠린다.모르고 저지르는 잘못은 용서할 수 있으나, 알면서도 범하는 잘못은 용서로 끝나지 않는다. 묵직한 책임이 따르며,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후회'라는 죄벌罪罰속으로 끌고 가버린다. 그럼에도 사랑을 하고 삶을 영위함에 있어&nbs.. 더보기
언어의 온도 - 인향人香 / 당신에게 남은 나의 인향人香이 조금은 궁금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향香'이 남는다. 그 향은 그리움과도 같기에 화향花香은 천리를 가지만, 사람의 향은 만리를 간다.이 구절은 눈이 읽었으나 가슴에 박혔고, 만나는 이들마다 그들의 향기를 짐작하게 했다. 그들의 말투와 내뱉는 단어들, 그 모두의 시작인 목소리에서 특유의 향을 음미(吟味)해 보기 시작했다.논쟁 속에서도 냉정히 최대한의 해답을 제시하는 그는 잘 벼려진 쇠와 같은 향이 났고, 하루가 막장으로 치닫는 시간에 지칠만 도 하것만, 생기 있게..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