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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

딸기 / 눈 속에 담긴 봄 첫눈에 이어 두 번째 눈이 내린 어제 아침. 여명이 밝아 온 직후였던 하늘에는 파란색의 영향력이 막대했다. 분명 오전에 눈 소식이 있었고, 눈 소식이 있는 날이면 하늘은 전쟁을 준비하는 장수들의 분주함처럼 구름을 한가득 끌어다가 내릴 준비를 할 텐데, 그 전야는 낌새조차 보이지 않았다. 하나, 아주 잠깐 먼 눈을 판 사이. 하늘은 갑작스레 어두워졌다. 당장이라도 눈이 내릴 듯 눈 구름은 몸집을 부풀렸고, 순식간에 눈을 땅 위로 내렸.. 더보기
감홍 / 너는 누구보다 달콤했다. 가을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색으로 가을에 열리는 녀석은 마치, 어린 시절 내가 사고를 칠 때면 "넌 대체 누굴 닮은 거니"라 말씀하시던 어머니의 꾸중을 떠오르게 한다. 세상을 온통 노란색의 범주 안에 들어가는 모호한 색으로만 천지에 깔아두는 가을에, 유별나게 붉은 색을 띠는 사과는 어머니의 꾸중처럼 가을과는 어울려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꾸준히 가을에 태어나던 녀석들은 매번 늠름하게 자라 어머니께 말한다.가을은 사실 매일 .. 더보기
귤 / 너는 점점 더 아름다워지겠구나. 껍질을 찢어 벗기면 주황색의 속살이 아닌 향을 먼저 대면한다. 아니, 껍질을 찔렀던 손톱 자리부터 이미 귤 향이 피어 오른다. 누군가 상큼한 향을 말하라 하면 이것을 말하면 되겠구나 싶을 만큼, 진한 향이다. 정확히는 진해지려고 하는 향이다. 이 향은 다음 달이면, 그 다음 달이면, 계절이 차갑게 식어 갈 수록 더 진해질 것이다. 아직은 초록색이 마치 얼룩 마냥 노란색의 옷에 묻어 있는 듯 보이지만, 곧 색 노란 .. 더보기
단감 / 이 가을의 마지막 피날레 어린 시절을 보냈던 할머니 댁의 한 편에는 소 두 마리가 우는 작은 외양간과 그 옆을 문지기처럼 지키는 감나무가 있었다. 할머니는 계절이 가을에 접어들면 나무에서 떨어지는 감을 소쿠리에 담으셨는데, 보통은 그것으로 감말랭이를 만드셨지만 생으로 깎아 드시기도 했다.당시 어린 나는 할머니가 하신 "감을 먹으면 화장실에 못 간다"라는 말 때문에 말랭이가 된 감만 먹었지만, 그 날은 무.. 더보기
연시, 홍시 / 가을 색을 죽을 만큼 취한 이 싱싱하고 단단한 모양새야 말로 신선한 과일이라 인정받는 것이 그들 사이에서는 불변의 법칙처럼 자리 잡혀 있다. 본연의 색은 가을에 풍작을 맞이한 곡식보다 더 짙어야 하고, 촉감은 다부지고 고와야만 누군가의 손에 한번이라도 더 잡힐 수 있는 것이 자신들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그 사실에서 괴리적인 녀석이 있다.물러야만 비로소 걸맞은 이름을 달게 되고, 하루가 다르게 수명을 다하는 듯한 깔의 쇠약함은 먹어서는 안되는 것이 아닌,.. 더보기
스마트팜 / 기술의 발전이 가져올 차가운 세상 "가을과 겨울 무렵의 이른 아침은 파란색이 그림자처럼 드리워져 있는데, 이것으로 간밤에 어둠이 참아낸 냉기를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지. 창문으로 새어 들어오는 건 햇빛 대신에 파란색일 정도로 그 색은 상당히 짙어.피곤한 몸과 무거운 눈꺼풀을 떼어내기는 힘들지만, 현관문을 열어 바람 소리보다 큰 새의 지저귐과 정신을 때려 깨우는 냉기를 느끼면 순식간에 온몸의 리듬이 깨어나게 돼. 그럼 이제 어둠과 함께 남몰래 밤의 추위를 참아낸 자식.. 더보기
비닐하우스 / 할머니가 가지셨던 순수함 어린 시절, 선생님은 나와 학우들에게 질문 하나를 던지셨다.우리나라만이 가진 특별함을 말해보세요.이 나라에 태어나 선조가 물려준 언어를 포함한 자원으로 살아가는 것이 그저 당연한 권리라 여겼던 나에게, 그 권리가 갖는 특별함을 묻는 질문은 어린 나를 난감하게 만들었다.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담임이셨던 선생님은 지식 적인 면을 먼저 채워 질문을 하는 것은, 답안지를 보고 답을 작성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자신만의 신조를 갖고 있으셨던 듯 하다.. 더보기
곶감과 감말랭이 / 빛이 귀한 거리에 흔들리던 감나무 얼마 전 이었다. 슈퍼문이 뜰 거란 소식은 분명 없었음에도 큰 달이 떡 하니 밤하늘을 채우고 있었다. 씨가 될 말이 있어야 기대감이 생기고, 기대감이 있어야 대상에 도달했을 때 성취감도 생기 것 만, 기대하지 못한 등장에 그저 놀라 발을 멈춰 넋을 놓고 볼 뿐이었다.짙은 노란색의 달은 표면에 거뭇거뭇한 바다를 내세우며 위용 같은 것을 뽐내고 있었고,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번화가의 빛은 밤하.. 더보기
보은 대추 / 하얀 손이 건네 준 대추 한 알 지어진 지 오래된 집부터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집까지. 지붕들이 하나 같이 낮은 키를 갖고 있어, 그것들이 가진 색이 훤히 보였다. 파란색의 하늘 아래 진부한 초록의 땅을 무심하게 꾸미던 지붕의 색 들은 어떠한 감동도 없었다. 하지만 이리도 가슴을 시선과 오래도록 머물게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어딘가에 대상을 정해두고 시선을 고정 시키지 않았다. 동선을 그리지 않았다. 이 시선은 모든 곳에 모든 것을 동시에 보려는 듯 욕심을 한껏 부릴 뿐.. 더보기
화산배 / 찰나가 남긴 깊은 것들 모호한 색이다. 어느 것으로 이름을 지어 불러야 하고, 어떤 단어를 입에 올려 너의 색을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노란색으로 할까? 그렇게 칭하기에는 빛이 꽤 바래져 있다. 연한 노란색으로 할까? 그렇게 칭하기에는 연노랑이 가진 풋풋함과 연약함과는 이질적인 투박함을 가졌다. 그럼 어떠한 색으로 너를 표현하면 좋을까?문득 눈을 하늘에 올려다 놓았다. 햇빛이 가을을 입은 탓에 그 색에 붉은 끼가 서려 있었다. 만선의 꿈을 이룬 배 수백 척이 파..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