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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

시인의 멜론 국가國家는 국화國花나 국가國歌같은 것으로, 사람은 각자 가지고 있는 외내향적 특징으로 자신만의 상징적인 것을 만들어 표출한다. 그리고 단연, 계절 또한 저마다 상징적인 색을 갖고 자신이 머물다 가는 시간 동안 세상에 잠식한다. 겨울은 하얀 눈을 내세워 새파란 추위를 매 순간 모든 공간에 뿌려 놓고, 봄은 무수히 피어나는 형형색색의 꽃들을 내세우지만 벚꽃과 사랑을 닮은 선홍빛을 배경으로 한다. 가을은 말라죽어가는 낙엽의 애처로운 갈색과 마지막 핏기를 .. 더보기
그녀의 대추 지어진 지 오래된 집부터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집까지. 지붕들이 하나 같이 낮은 키를 갖고 있어 그것들이 가진 색이 훤히 보였다. 파란색의 하늘 아래 진부한 초록의 땅을 무심하게 꾸미던 지붕의 색들은 특별한 감흥을 주지는 않았다. 세월이란 것에 생기生氣라는 이름 아래 색과 견고함과 살점을 담아 건넨 탓일까, 지붕은 드문 드문 기왓장이 빠져 있었고, 남은 것은 예외 없이 이가 빠져있었다. 어느 빈집은 빗장이 마지막 걸음이 언제인 지 헤아릴 수 없을 정.. 더보기
'눈의 향'이라 불리는 딸기 첫눈에 이어 두 번째 눈이 내린 어느 날의 아침. 여명黎明이 밝아 온 직후 하늘은 파란색의 압도적인 지배를 받았던 어제를 지나, 점차 청명淸明을 멀리하고 구름을 끌어다 모으기 시작했다. 오전에 눈 소식이 있을 거란 건 뉴스를 통해 이미 알고 있었고, 그럼 눈 소식이 있는 날이면 하늘은 전쟁을 준비하는 장수들의 분주함처럼 일찍이 눈구름을 대동하며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정작, 전야前夜까지도 낌새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아주 잠깐 먼 눈을 판 사이. 하.. 더보기
딸기 / 눈 속에 담긴 봄 첫눈에 이어 두 번째 눈이 내린 어제 아침. 여명이 밝아 온 직후였던 하늘에는 파란색의 영향력이 막대했다. 분명 오전에 눈 소식이 있었고, 눈 소식이 있는 날이면 하늘은 전쟁을 준비하는 장수들의 분주함처럼 구름을 한가득 끌어다가 내릴 준비를 할 텐데, 그 전야는 낌새조차 보이지 않았다. 하나, 아주 잠깐 먼 눈을 판 사이. 하늘은 갑작스레 어두워졌다. 당장이라도 눈이 내릴 듯 눈 구름은 몸집을 부풀렸고, 순식간에 눈을 땅 위로 내렸.. 더보기
감홍 / 너는 누구보다 달콤했다. 가을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색으로 가을에 열리는 녀석은 마치, 어린 시절 내가 사고를 칠 때면 "넌 대체 누굴 닮은 거니"라 말씀하시던 어머니의 꾸중을 떠오르게 한다. 세상을 온통 노란색의 범주 안에 들어가는 모호한 색으로만 천지에 깔아두는 가을에, 유별나게 붉은 색을 띠는 사과는 어머니의 꾸중처럼 가을과는 어울려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꾸준히 가을에 태어나던 녀석들은 매번 늠름하게 자라 어머니께 말한다.가을은 사실 매일 .. 더보기
귤 / 너는 점점 더 아름다워지겠구나. 껍질을 찢어 벗기면 주황색의 속살이 아닌 향을 먼저 대면한다. 아니, 껍질을 찔렀던 손톱 자리부터 이미 귤 향이 피어 오른다. 누군가 상큼한 향을 말하라 하면 이것을 말하면 되겠구나 싶을 만큼, 진한 향이다. 정확히는 진해지려고 하는 향이다. 이 향은 다음 달이면, 그 다음 달이면, 계절이 차갑게 식어 갈 수록 더 진해질 것이다. 아직은 초록색이 마치 얼룩 마냥 노란색의 옷에 묻어 있는 듯 보이지만, 곧 색 노란 .. 더보기
단감 / 이 가을의 마지막 피날레 어린 시절을 보냈던 할머니 댁의 한 편에는 소 두 마리가 우는 작은 외양간과 그 옆을 문지기처럼 지키는 감나무가 있었다. 할머니는 계절이 가을에 접어들면 나무에서 떨어지는 감을 소쿠리에 담으셨는데, 보통은 그것으로 감말랭이를 만드셨지만 생으로 깎아 드시기도 했다.당시 어린 나는 할머니가 하신 "감을 먹으면 화장실에 못 간다"라는 말 때문에 말랭이가 된 감만 먹었지만, 그 날은 무.. 더보기
연시, 홍시 / 가을 색을 죽을 만큼 취한 이 싱싱하고 단단한 모양새야 말로 신선한 과일이라 인정받는 것이 그들 사이에서는 불변의 법칙처럼 자리 잡혀 있다. 본연의 색은 가을에 풍작을 맞이한 곡식보다 더 짙어야 하고, 촉감은 다부지고 고와야만 누군가의 손에 한번이라도 더 잡힐 수 있는 것이 자신들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그 사실에서 괴리적인 녀석이 있다.물러야만 비로소 걸맞은 이름을 달게 되고, 하루가 다르게 수명을 다하는 듯한 깔의 쇠약함은 먹어서는 안되는 것이 아닌,.. 더보기
스마트팜 / 기술의 발전이 가져올 차가운 세상 "가을과 겨울 무렵의 이른 아침은 파란색이 그림자처럼 드리워져 있는데, 이것으로 간밤에 어둠이 참아낸 냉기를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지. 창문으로 새어 들어오는 건 햇빛 대신에 파란색일 정도로 그 색은 상당히 짙어.피곤한 몸과 무거운 눈꺼풀을 떼어내기는 힘들지만, 현관문을 열어 바람 소리보다 큰 새의 지저귐과 정신을 때려 깨우는 냉기를 느끼면 순식간에 온몸의 리듬이 깨어나게 돼. 그럼 이제 어둠과 함께 남몰래 밤의 추위를 참아낸 자식.. 더보기
비닐하우스 / 할머니가 가지셨던 순수함 어린 시절, 선생님은 나와 학우들에게 질문 하나를 던지셨다.우리나라만이 가진 특별함을 말해보세요.이 나라에 태어나 선조가 물려준 언어를 포함한 자원으로 살아가는 것이 그저 당연한 권리라 여겼던 나에게, 그 권리가 갖는 특별함을 묻는 질문은 어린 나를 난감하게 만들었다.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담임이셨던 선생님은 지식 적인 면을 먼저 채워 질문을 하는 것은, 답안지를 보고 답을 작성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자신만의 신조를 갖고 있으셨던 듯 하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