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아껴왔던 말

기억으로만 전승되는 놀이

"쎄쎄쎄 아침 찬 바람에 울고 가는 저 기러기…"


"남산 위에 초가집 짓고 어여쁜 얼굴로 달려갔더니 옆집 순이는 시집을 가고…"


"영심이 메롱 영심이, 영심이 짝짝 맞아 영심이…"


이른 저녁 시간에 연인과 방문한 음식점에서 은은히 퍼지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초등학생도 안돼 보이는 사내아이와 여자아이는 서로 손을 맞잡고 "쎄쎄쎄"를 하며 몇 사람 없는 홀에 까르르 웃음소리를 함께 퍼뜨렸다. 그날 식당에는 사람이 거의 없어 한산하기까지 해서 인지 아이들이 내는 약간의 소란함을 모두 개의치 않아 하는 듯했고, 나 또한 특별히 시끄러움을 느끼지 않아 마음 편히 그 광경을 보고 있었다.


아이들은 쎄쎄쎄를 비롯해 다른 몇 개의 놀이를 노래와 섞어 불렀는데 문득, 주위 사람들은 저 광경을 어떠한 표정으로 지켜보는지 궁금해졌다. 나의 마음 언저리에 반색의 감정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것에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혹시 나의 예상이 맞는지, 그것이 궁금해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역시나. 몇몇 사람들의 얼굴에서 얕은 미소를 보았고, 아이들의 노래를 흥얼거리는 입술의 달싹임을 보았다. 나와 마찬가지로 신비로움을 목격한 것이었다. 기록되는 역사와 달리 기억으로만 전승되어 사라지기 쉬웠던 우리의 놀이가 버젓이 살아있었다.


시뷰 / 와카레미치


"저 놀이 분명 우리가 어렸을 때 했던 건데, 지금 애들이 어떻게 아는 거지? 부모가 가르치는 걸까"


"어디선가 만나게 된 형, 오빠, 언니, 누나들에게서 건네받듯이 배운 거야. 그들 또한 형, 누나에게. 위로 오르고 올라 출처를 찾는다 한 들 답은 하나야. 결국 윗사람에게 배운 것들이지. 그것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거야 지워지지 않고. 조금은 각색되어 생경하기까지 한 것들도 있지만 말이야."


시뷰 / 와카레미치


문화 활동에 의하여 창조된 '문화재'는 그 이름이 붙음으로써 세월이 허락하는 한 선대와 후손 사이에서 길이길이 기억될 우리 모두의 소중한 보물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무형無形과 유형有形으로 나뉘어 조금이라도 더 많은 것들을 사라지지 않도록 유지하기 위한 우리의 바람까지 담고 있는데, 유형有形은 실존하는 본모습을 유지하며 우리에게 시각적인 것으로 감명을 안기지만, 무형無形은 형태가 없어 헤아릴 수 없다는 진귀珍貴가 다르게 해석된 것일까. 마치 어딘가 모여 사는 역사의 증인들처럼 조금은 무심하게 대해지기도 한다.


눈에 보이는 것만을 믿고, 그것에 가치를 가장 으뜸으로 치는 우리의 심리는 역사적인 사실로써 기록된 증거가 없는 것은 그저 민담이나 설화 정도로 치부하곤 한다. 또한 여전히 살아 있는 무형無形에 대해서는 그저 그러한 것이 있다 수긍하고 인정할 뿐, 실존하는 현물만을 중요시 여기는 우리는 유형有形을 최우선으로 보전하려 애를 쓴다. 반면 무형無形은 어떨까. 모든 이에 노력으로 보전되는 것이 유형有形이라면, 개인과 개인의 애증으로 이어지는 것이 무형無形이다.


우리의 혼이라 평가받는 노래와 판소리. 한 사람이 빗지만 선대의 손길이 모두 거치는 음식과 유기鍮器. 그러한 것들은 유형有形만큼 많은 관심을 받지 못한다. 외로이 바람 앞에 흔들리는 불꽃처럼, 바람에 묻혀 소리 없는 발화를 애처롭게 행할 뿐이다. 그래서 쉬이 사라지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과거 외력에 의해 안타깝게 소실된 것부터 망각에 의해 안일하게 사라진 것까지. 유형有形도 예외 없는 사연이지만, 무형無形만큼 안타까울까.


시뷰 / 와카레미치


쉬이 사라지는 것들이 점점 안타깝고 슬픈 나이다. 20대의 마지막을 맞이한 올해의 첫 밤은 유난히도 그날 음식점에서 퍼지던 옛 우리의 놀이를 아른거리게 했다. 지난날 쉼 없이 쌓아온 나의 20대의 기억 중에는 무형 문화재라 이름 붙여 유지하고 싶은 기억도 있지만, 영원히 유기遺棄하고 싶은 기억도 있다. 그래서 언젠가 한 번은 모든 걸 분류해 땅에 묻을 것과 숨통을 트여 주어 썩지 않게 보존할 것을 가르려 했다. 물론 그것들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다. 좋은 기억이건 나쁜 기억이건 간에, 나름 좋은 것이라 말할 수 있는 것에는 몇 번의 회상을 통해 지워지지 않을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 줄 수 있지만, 결국에는 망각이라는 이름 아래 구별 없이 사라질 것들이다. 그래서 특별히 기록을 함으로써 영원히 추억하려 안간힘을 쓰기도 한다.


하지만, 그날 음식점에서 퍼지던 우리의 놀이를 떠올리니, 언젠가 써냈던 언어의 만용처럼 기억도 사라진다 표현하는 것은 경솔한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언어처럼 기억도 만들어진 이상 사라지지 않고 어딘가에 바다를 이룬다. 사라지는 것은 우리 안에 새겨진 자국 같은 것일 뿐, 어딘가에 계속해서 기억된다. 나와 함께 그 기억을 만든 타인에 의해서 일 수도, 그 기억에 등장하는 모든 장소일 수도 있다. 나에게 새겨진 자국이 흐릿해지는 것일 뿐, 흉터처럼 어딘가에 남아 있을 것들이다.


그렇담 무형 문화재의 슬픈 처우로 고개를 숙인 사람들에게도 조금은 위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기억만큼 영원한 것은 없다. 썩어 사라지면 흔적도 없을 형태를 가진 것들이 절대로 가질 수 없는, 기억에 의해 전승된다는 특권을 가진 것이니까.




시뷰 / 와카레미치 입니다. 삶과 사람의 틈새에 산란해 있는 사정을 추려 글을 쓰고 윤색潤色합니다. 땅에서 시작된 작은 생명이 수십억 인간의 삶이 되는 것에 경외심을 느껴 농산물을 소재로 글을 쓰기 시작했고, 수필 연재와 만났던 농민의 작물을 독자에게 연결해 전달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 농산물 구매 관련 문의 http://pf.kakao.com/_djzeC

※ 페이스북 : https://www.facebook.com/aq137ok

※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_seong_bae/ / https://www.instagram.com/_siview/

※ aq137ok@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