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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껴왔던 말

새벽에 마주한 공중전화박스

하루 사이에 무겁게 내려앉은 겨울 추위 속에서 눈을 떴다. 시간은 새벽 5시 30분이었고, 휴대폰 배경에 띄어 놓은 날씨 위젯에는 '-8도'라는 숫자가 쓰여있었다. 그저께만 해도 이 시간에 온도는 영상 10도를 기록하고 있었는데, 이틀 사이에 20도에 가까운 온도 차이로 한 순간에 한 겨울이 되고 말았다. 그 날밤 겨울을 얕잡아 보던 나의 말을 들었던 것일까.


"12월인데 아직도 최저 온도가 영하로 떨어지지 않다니. 올해 겨울은 유난히 추울 거라 했던 예보는 어디 간 거지"


이른 아침에 출발해야 시간을 맞출 수 있던 그날은 5시 30분이란 시간도 썩 여유롭지 않아, 으슬으슬 떨리는 몸으로 서둘러 씻은 후 옷을 입었고, 마지막으로 의자에 걸쳐 두었던 회색 목도리를 목에 둘러 집을 나섰다. 이 시간에 집을 나서는 건 꽤나 오랜만이어서 그런지, 아직도 새벽의 중간을 달리는 듯한 어둑함과 코로 들어오는 찬 공기만으로도 기분이 묘하게 상쾌했다. 나는 정류장까지 10분 남짓 걸리는 거리를 음악을 들으며 천천히 걸었다. 그러다 작은 조명 하나로 밝게 빛나는 공중전화 박스를 발견하곤 잠깐 걸음을 멈췄다. 오랜만에 발견하는 공중전화 박스. 문득, 마지막으로 저것을 사용한 것이 언제였는지 생각해보니 군에 있을 때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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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면 아침 6시 30분에 기상하는 것이 일과의 시작이었던 그때는 새벽 초소 순환 근무를 마지막 차례에 수행한 사람에게는 조금 애매한 시간이었다. 약 1시간 30분가량의 근무를 마치고 복귀하면 거의 6시쯤이었기에, 이미 군복을 생활복으로 환복 하기에도 잠들기에도 애매한 시간이었다. 그럼 대개 숙소로 복귀한 뒤 남은 30분은 그저 멍하니 앉아 있거나, 복장 그대로 잠깐 누워있는 것으로 때워야만 했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상병 계급장을 달고 두 번째 겨울을 맞이했다. 한 달 정도 차이가 나던 선임과 근무를 마치고 생활관을 복귀한 직후, 평소 친했던 그와 기상까지 남은 무료한 시간을 해소하기 위해 따뜻한 캔커피를 들고 야외 휴게실로 향했다. 숙소 건물의 후문을 열고 나가면 바로 위치한 간이식 휴게실은 빨간색 공중전화 박스와 마주 보고 있었기에, 우리가 앉은 자리의 정면으로 하얀 조명을 뿜어내는 전화 부스를 바로 볼 수 있었다. 우리는 나란히 앉아 부스를 보며 캔커피를 말없이 삼켜냈고, 잠시 후 22살의 그가 입을 열었다.


"너는 저 공중전화를 언제 처음 써봤니. 나는 여기 와서 처음 써봤는데, 입대 직후 수많은 동기들과 함께 마음 조리며 순서를 기다리다 처음 통화했을 때 그 낯설고 감격스러운 감정이 동시에 밀려오던 것이 아직도 잊히지 않아. 휴대폰, 집 전화, 공중전화 모두 결국은 물질적 거리감을 해소해 소통하고자 만들어진 것인데도, 휴대폰이나 집전화를 쓰면서 저 공중전화처럼 감격스럽거나 소중했던 기억은 없었던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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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사람 많은 투박한 술집에 갔을 때, 천장과 벽지를 빼곡히 채운 낙서를 발견했다. 너도 나도 남기는 발자취로 의미 없는 글자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군데군데 조금 더 상세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고, 그 문장들의 시작은 대체로 날짜를 거론하고 있었다. 2003년, 2005년, 2011년, 2015년… 


친구나 연인 혹은 그 중간쯤의 모호한 관계를 가진 인연들 수백 개가 10년이 넘도록 이 공간을 다녀가며 곧곧에 흔적을 남겨둔 것이었다. 저 짧은 문장을 남기기 위해 적게는 몇십 분, 많게는 몇 시간까지 갖가지 이야기를 공중인지 상대인지 짐작할 수 없는 소음 속에서 흩뿌리며 이 공간 내에 겹겹이 쌓아냈을 것이다. 그래서 알게 모르게 오랜 인연에게는 추억을 되새길 수 있는 장소로, 지난 인연에게는 아쉬움과 씁쓸함을 안기는 중의적 장소로 변모해 있었다.


군에 있을 적 새벽에 그와 함께 바라보던 공중전화 박스처럼 빛나던 길가의 마지막 전화부스를 보며, 이곳에는 얼마나 많은 사연이 거쳐 갔을까 헤아려 보았다. 적어도 10년 전, 내 나이 18살 때 나의 이야기 한 편은 이곳에 토씨 하나 빠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다. 전화가 없던 나에게 유일한 연락책은 이 전화 부스였으니, 나의 한 시절은 이곳에서 꽤나 많이 뱉어지고 누군가에게 흘러갔을 것이다. 


사실, 20대 후반의 내 나이는 공중전화와 가까운 나이 때는 아니다. 이미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기만 해도 휴대폰을 갖고 있는 친구들이 많았고, 그 이상으로 집전화는 흔했으며 PC 메신저가 유행했다. 그래서 우리의 윗세대만큼 공중전화에 담긴 사연을 가늠한다는 것은 나의 선에서는 금세 한계에 봉착하는 일일 것이다. 찰나 동안 이용했던 공중전화에 대한 기억만 해도 나에게는 이리도 크니 말이다. 그래도 군에 있을 적, 가방 정도 크기밖에 되지 않는 작은 전화기로 바깥을 맴도는 소식을 전해 받기 위해, 많은 동기들이 발을 동동 구르던 그때의 겨울이 유난히도 선명히 떠오르는 건 어찌할 수가 없다.


가끔은 저 전화 부스 안에 들어가 사랑하는 누군가의 번호를 하나하나 직접 눌러 전화를 걸어야겠다. 지금은 하루에 한 사람조차도 말 걸어주지 않아 쓸쓸한 공중전화의 수화기에 위로와 함께, 그가 적적하지 않게 나의 사적인 이야기를 그를 통해 사랑하는 이에게 전해야겠다. 나에게는 때 묻지 않은 무구한 추억을 되새기는 일이 될 것이며, 부스 안에 쓸쓸히 서있는 전화기에게는 따뜻한 위안이 될 테니까.




시뷰 / 와카레미치 입니다. 삶과 사람의 틈새에 산란해 있는 사정을 추려 글을 쓰고 윤색潤色합니다. 땅에서 시작된 작은 생명이 수십억 인간의 삶이 되는 것에 경외심을 느껴 농산물을 소재로 글을 쓰기 시작했고, 수필 연재와 만났던 농민의 작물을 독자에게 연결해 전달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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